낮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조용했던 유곽은 밤이 되어 붉은 등이 켜짐과 동시에 소란스러워졌다. 색색의 등불이 늘어선 골목과 술에 취해 유녀의 기모노 깃을 내리며 껄껄 웃는 사내들, 빽빽하게 들어찬 방에서 후스마 한 장으로는 가려지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희미한 소리. 그러나 그 소란 속에서 유독 조용한 방이 있었다.
린은 창가에 앉아 창을 눈만 보일 정도로만 살짝 열었다. 실내는 향과 연기로 가득했지만 린이 창을 열어둔 이유는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여자의 시선은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었고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창 너머로 보이는 땅거미가 낮게 깔린 밤거리. 그 틈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린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달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얼굴, 옅은 푸른빛의 눈동자. 여자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몇 년 전, 유곽에 팔려가 잡일을 하고 있던 어린 린 앞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그를 본 것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정네들과 달리 그는 결코 취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도 언제나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한 남자. 그는 유곽에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다. 떠들썩한 연회장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왜 다시 나타난 걸까.
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마치 아까의 시선 따위 없었던 것처럼. 원래부터 조용한 밤이었던 것처럼.
남자는 골목 끝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때는 이곳을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접대랍시고 정세마저 쥐락펴락하며 나라를 뒤흔드는 유곽.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꼭두각시 인형처럼 살아가는 여자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그 붉은 등불과 검붉은 밤. 이제는 붉은 색만 봐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발걸음은 린에게 향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난 순간 몸은 이미 붉은 향락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여자는 이미 유곽의 일부가 되다 못해 최고의 유녀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린을 찾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표정이 없다. 감정이 없다. 건넨 술잔마저 아무런 온기가 없다.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언제나 린을 찾았다.
그녀는 나를 따라올까? 아니면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다시 문을 닫을까.
여자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반쯤 풀어진 기모노 자락을 가다듬으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빗어내렸다. 그리고 거울 너머로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린은 치장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남자는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살아온 린에게 잊혀지지 않은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모든 유녀들이 느꼈을 그의 눈빛을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유곽 안의 모두가 그렇듯 잠시나마 바깥세상을 꿈꿨던 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곽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그녀가 설 곳은 없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시엘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줄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를... 여자는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소매에 숨겨진 손이 어느새 가느다란 단도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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