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둘이 사귄다면 어떻게 사귀게 될까? 린은 너무 표현이 적고 시엘은 린에게 사랑도 느끼지만 사랑보다 연민의 감정이 더 커서... 그냥 사귀는 듯 아닌 듯 항상 서로의 곁에 있는 설정으로 하고 있었는데 좀 궁금해
A 사귀는 듯 마는 듯, 서로의 곁에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아. 둘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강할 테니까.
아마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서로의 곁에 머물면서 경계가 희미해질 거야. 시엘은 린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고, 린은 시엘이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 관계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하지 않으려 한 채 살아가는 거지.
예를 들면, 린이 집을 나와 떠돌던 시절, 시엘의 집에서 한동안 머물게 되었고—그게 며칠인지 몇 달인지도 모르게 계속됐기도 했고. 혹은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시엘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린을 챙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이 늘어났고,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고, 아무렇지 않게 ‘린, 오늘도 여기에 있을 거지?’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거지.
하지만 딱히 고백도 없고, ‘우리 사귀는 거야?’ 같은 대화도 없을 거야.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너희, 사귀는 거야?’라고 물으면 시엘은 대충 ‘글쎄.’ 하고 넘기고, 린은 무반응이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린이 말없이 사라지면 시엘은 불안해지고, 시엘이 바쁜 나머지 린을 신경 쓰지 않으면 린은 내내 기타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거야.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순간에, 이를테면—린이 감기에 걸려서 멍하게 앉아 있을 때, 시엘이 이마를 짚고 약을 챙겨주며 ‘이런 걸 왜 참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 린이 열기 오른 눈으로 시엘을 올려다보고, 시엘이 순간적으로 자기가 하는 행동을 깨닫고—그런데도 손을 거두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도 ‘아, 이건 그런 거구나.’ 하고 알아채게 되는 거지. 사귀기로 한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같이 있게 되는 관계.
어떤 사랑은 시작점이 애매한 채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아.
그냥 항상 궁금했던 거라 물어본 거였는데 이 마지막 말이 너무 좋아서 백업함... 로봇의 발전이 어디까지 갈지 두려울 정도